이 바보 없이 못 살겠습니다 못 살겠다고요

1년 차 때랑 똑같다는 말에 심히 충격을 받으셧나 보죠

김사비 명대사

이영이 명찰을 왜 너가 메고 있는데

떨리는 손 겨우 가리고 고르지 못한 숨을 들이마시더니 오늘은 이만 가 보겠다며 일어남 재일도 덩달아 일어났지만 자리를 뜨는 사비를 따라가지는 못했을 듯

협조는 잘할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시면 비서님 통해서 연락 주세요 그리고 최대한 얼굴 안 보면서 진행하면 좋겠어요 낯설게 느껴지는 사비에 얼이 빠져서 사비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 시선을 의식한 사비가 불편한 내색을 비추겠지

옷차림은 처음과 별다를 게 없었지만 누가 봐도 굳은 표정, 처음과는 달리 더 헐렁해진 옷맵시, 창백한 얼굴을 보고 심장 2차 철렁함 심각한 표정으로 사비 보고 있다가 괜찮냐고 물으려고 하니 사비가 말을 끊으려는 듯 급하게 말을 꺼냈음

대면하고 사건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위해서 미팅 날짜를 잡았음 재일은 왠지 모르게 떨렸겠지 공적 미팅이 아닌 것만 같았달까 앉아서 사비를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안 지나서 사비가 들어옴

안 맡으려고 발버둥 쳐대도 어쩔 수가 있나 대표는 일 안 하려고 하지, 다른 변호사들은 바빠 죽으려고 하지 별 수 있나? 맡아야지

엄 변! 저번에 맡았던 그 회장님 딸내미 있지? 걔 사건 엄 변이 좀 맡아 줘요 회장님이 아주 그냥 들고 일어나셨어 유포한 놈이랑 악플 단 놈을 싸그리 다 걸고넘어지시겠다네 하며 또 일 던지고 나갈 듯 얼떨결에 김사비 관련 소송을 두 번이나 맡게 됐음 처음엔 피고소인으로, 지금은 고소인으로

그 철없는 애가 이런 기사랑 악플을 견딜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더 이상 만날 일도 없는데 신경은 왜 또 쓰이냐 하면서 의자에 기대서 머리 쓸어 넘기고 있으면 대표가 냅다 문 열고 들어올 듯

“숨겨진 대기업 막내딸, 사실은 양자였다” “ㅇㅇ그룹 김사비, 출생 비밀 드러나자 비난 쇄도” 우리나라에서 1, 2위 정도의 대기업의 이슈다 보니 쉽게 모든 사람들의 표적이 됐겠지 재일이 뉴스로 그 소식을 먼저 접하고는 심장이 철렁했음

못 보고 지낸 지 몇 달이 지났을까, 사비는 언론에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라 잊기도 쉬웠을 듯 그렇게 머릿속에 드문드문 생각나는 애 머리 한 번 젓고 잊을 정도가 됐는데 평소처럼 들어간 뉴스 기사에서 김사비 이름 석 자를 마주쳐 버림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더 이상 재일의 책상 위에서 사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음 재일이 즐겨 먹지 않던 프라페도, 포스트잇 위에 동글동글한 글씨로 적혀 있던 김사비 석 자도, 사비가 다음 만남의 구실을 위해 실수인 듯 올려두고 간 귀걸이도, 팔찌도 다시는 볼 수 없었겠지

전 연애에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 들었음 이게 무슨 감정이지? 무언가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에 입술을 씹으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가 이제 집에 가셔야 한다는 비서의 말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음

사비가 재일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재일의 그림자를 밟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겠지 물론 재일에게 다가간 게 온 진심을 다 해서 다가간 건 아니었음 여느 연애처럼 가볍게 시작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제가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번 말하는 사비를 보며 재일이 입을 열었음 변호사님 무슨 생각 해요? 밥 먹으러 가자니까요 아니요 재판 끝났으니까 저희도 여기까지만 해요 수고하셨어요 김사비 씨 먼저 가 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재일이 사비를 두고 먼저 돌아섰음

증거 영상 속 사비의 말은 분명 누가 들었다 한들 상처가 될 것 같은 말인데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웃으면서 저번에 먹기로 한 밥 지금 먹자는 사비를 보니 마음이 꺾이는 걸 느꼈을 듯 처음부터 철없고 어린 애인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거지 본인이 어리석었다는 걸 깨달았음

그렇게 조금 가까워졌나 싶었을 때쯤 두 번째 재판이 열림 고소인이 제출한 영상에는 사비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겨 있었겠지 사비가 고소인을 비하하고 비난하는 듯한 내용의 영상이었음 결국 고소인이 부르는 만큼의 돈을 내는 것으로 합의가 됨

그건 됐고 커피나 한잔 하자는 사비의 말에 머뭇거리다가 수락하고 둘이서 카페 갈 듯

재판날, 고소인의 증거 불지참으로 진행도 하지 못한 채 바로 나왔음 그 재판에는 사비도 왔겠지 정말 사소한 재판이라 오지 않아도 되는데도 온 사비를 보며 재일이 어리둥절해할 듯  김사비 씨? 왜 벌써 나와요? 나 많이 늦은 건가? 아뇨 재판 미뤄졌어요 정확한 날짜는 아 그건 나중에 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