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시작된다 에서 이노우에가 말한 료타의 성격. 시원시원한 녀석이 아니라고 했는데 만약 책이 나온 시점(2008)에서 읽었다면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 내가 원작 만화로만 이해하던 료타는 작고 맵고 성질 급하고 기세 좋고 호쾌한 쌈닭이었다.
퍼스트 슬램덩크를 처음 본 날 가장 타격이 컸던 장면은 원작에 없던 중학생 미츠이와 료타의 첫 만남이었다. 이 타이밍에서 중학생 미츠이를 꺼내다니 이 귀신같은 작가. 스포일러로 내용 약간 알고 봤어도 충격이었고 여운도 심했음. 그 부분 화면이 유독 뽀얗고 예뻤던 탓일 수도.
슬램덩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미츠이이다. 미츠이 말고 또 누구? 라고 묻는 이에겐 30년 한결같이 센도와 요헤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작년 영화 개봉 후, 이들 셋은 작가의 지시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었거나 그래서 역할을 변경한 놈들이었단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이 만화에 찌들면 만화옷밖에 못 그리는데 이노우에는 사람이 입는 옷을 그렸다. 옷 가게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고 팬들은 칭찬한다. 애초에 사복 등장이 엄청 적긴 했지만 여성 캐릭터들이 입은 옷은 남자들이 구경하고 싶어 하는 옷이 아니라 그 시절 현실의 여자들이 선택하는 옷이었다
이노우에는 사쿠라기와 루카와의 얼굴에 같은 몰드(...)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동안 팬들은 얘들 둘이 거의 같은 얼굴이라고 종종 얘기해 왔고, 이것은 팬들 간의 낭설이 아니라 작가도 인지하고 있던 사실적시였다. 하지만 사쿠라기의 얼굴을 루카와 계열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는데,
미츠이의 심판은 요헤이가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부원과 불량 학생들이 무언으로 동의하고 함께 공범이 되어 심판은 완성된다. 어른 없는 세계에선 십중팔구 또래 중 하나가 어른 역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완벽한 어른 상을 보여준 것은 설정만 십 대 소년인 요헤이였다.
작가부터가 그 시절 제일 '튀어나온 못 같은 요즘 애'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명 공립 고등학교 농구부가 엘리트 농구부를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일개 만화가가 점프 편집부를 상대로 최고 히트작 연재를 끝낼 권리를 갖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그려낸 소년들은 세상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지금은 소년 만화가 성장이라는 메인 테마를 내려놓을 정도로 애건 어른이건 모두가 지쳐 있는 시대이다. 왜 농구를 시작했는지 이유도 잊고 실적 만들기에 내몰린 고교생들이 주인공인 이 만화는 그래서 이미터에 육박하는 장정들을 떼로 모아놓고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말해 준다.
소년 만화 속의 모험은 성인으로 성장하는 통과의례이다. 어른이 개입하여 성장 유예를 선택한 장도고는 승부 이전 성장을 증명할 방법을 잃었다. 그런데 독자들 반응은 그걸 진작 말해줬어야지로 흐른다. 당황. 그동안 소년 만화 문법이 바뀌었나?
아니, 바뀐 것은 소년 만화 문법이 아니라 시대이다.
시절을 감안하면 안자이 감독에게 특별히 모자라는 점은 없다. 그냥 한국 독자들이 공립 고등학교 운동부에게 기대하는 케어나 훈련의 수준이 높다. 그리고 운동부 감독은 교육자가 아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애들이 존경하는 감독님이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어른 없는 세계의 압권은 감독 없는 쇼요이다. 후지마는 소년들의 왕이자 여왕이며 부원들은 그의 기사들이다. 지도자 없는 고교 남자 운동부를, 글자만 봐도 짐승 냄새가 나는 설정을 가지고 하기오 모토 만화의 김나지움보다 정결하고 절도있게 그려놓았다. 나는 이래서 이 작가가 좋다.
고립된 료타를 상징하는 펜스가 미츠이에겐 무의미하고, 방어적인 태도의 료타에게 아무렇지 않게 팔을 뻗어 농구공으로 표현된 '마음'을 흔드는 모션 등,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은 세심하게 의도된 것들이다.
친구들을 따라간 소타와 겹쳐지도록 그린 미츠이도 그렇게 떠나버리고,
만화 속의 옷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멋진 옷을 그리는가 하는 것보다 평범한 티셔츠 한 장을 무난하게 그리는가 이며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상식과 인물에 대한 이해이다. 이노우에는 이걸 갖췄고 그래서 시선은 옷 한 벌에서 끝나지 않고 그 옷을 입은 인물에게로 다시 향한다. 그 점이 멋지다.
이와 대비되는 산노전. 작전 타임을 포기한 마지막 부분은 온전히 아이들만의 시간이 된다. 산노와 쇼호쿠 둘 다 결격사유 없이 성장을 증명하는 완벽한 승부였고 결과와는 상관없이 산노의 성장 양분이 될 거라는 건 모두가 안다. 패배의 책임은 어른의 몫이니 아이들은 경험과 성장을 가져가면 된다.
한참 팍팍해진 아이들을 살피느라 지상고 감독이 아예 아이들 숙소에 들어와 버리는 대목에서 놀랐음. 어, 이래도 되는건가 현실적이긴 하지만 소년 만화적인 방법은 아닌데. 아이들끼리 해결하도록 우선 지켜본다는 방식은 지금 사회엔 더는 어울리지 않나 보다. 요즘 기준으론 방치인가.
그새 유행 좀 바뀌었다고 요즘 팬들이 '저런 빗자루 머리를 하고서도 잘생겨 보이다니' 같은 얘길 해서 슬펐더란 말을 하고 싶다. 센도의 사복은 평범한 티셔츠 세 벌이 그려진 것의 전부였는데 손목의 시계 한 컷이 강렬했다. 사소한 작은 소품인데 캐릭터가 섬세하고 어른스러워 보인다.
산노전부터는 그림체가 둥글어지는데 다들 어려 보인다. 료타도 이 무렵부터 티나게 귀염상이 되는데 그땐 이게 그림체 변화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노우에가 캐릭터의 내면을 파악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음. 하지만 산노전 경기 역시 료타의 비중은 적었다.
가비지 타임을 한국 사회와 입시에 대한 이해 없이 본다면 기괴할 것 같은데, 슬램덩크도 그렇다. 어떤 풍토에서 그려졌는지 대강의 이해가 있으면 만화를 보기 좀 더 편할 것이다. 대학하고 관계없는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부 활동하면 취업에 유리해? 라는 질문은 들을 때마다 그냥 슬프다.
소년만화는 어른을 배제하며 시작한다. 아예 성인의 모습과 목소리 어느 것도 그림에 묘사하지 않는 찰스 슐츠의 피너츠 같은 만화들까진 아니더라도 7, 80년대 어린이 만화는 어른들 몰래 무인도로 모험을 떠나거나 마루 밑 비밀기지에서 쓸데없는 물건을 발명하는 아이들만의 세계를 즐겨 그렸다.
나는 이노우에 그림의 미소년/미청년이 좋다. 작가가 맘먹고 그린 미소년들이 좋고 자기 그림 다 잘생겨 보이는 거 알고 여자들 시선으로 한 번씩 밑줄 쳐주는 꼼꼼한 마음이 좋다. 그저 소년들을 장식하는 도구였을지라도 여성 캐릭터의 시선이 그때 어떤 의미였는지 한 시절의 이야깃감인 것도 좋다.
슬램덩크 전반부는 이런 전통대로 어른이 없다. 안자이 감독은 등장하며 가끔 오는 감독님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그래서 체육관은 어른이 없는 세계, 학생들만의 성역이 된다. 이것은 농구부만이 아니다. 유도부 아오타는 사쿠라기를 데려가려 애를 쓰는데 유도부 역시 감독이고 코치고 어른이 없다.
그래서 나중에 리소스에서 피어스 다시 확인하고 속이 복잡 미묘. 이노우에가 이 관계를 미츠이 줬단 ��인가. 이노우에가 자기 손으로 아야코(일지도 모르는 소녀)를 빼내고 그 자리에 미츠이를 넣었단 말인가. 미츠이는 쇠붙이 씹어먹는 불가사리처럼 제 앞에 스토리 놓인 족족 씹어 삼키는 괴물인가.
왜 유망 선수 발굴을 3학년 학생이 하고 있나. 하지만 독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그랬기 때문에. 웬만하면 아이들끼리 해결한다. 어른은 없다. 미츠이의 중학 시절 팀에 감독을 그리지 않은 것도 쇼요같은 팀을 의도했다기보다 관성적으로 어른을 안 그리는 소년만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3종 모두 들였음. 오리지널 점프 코믹스, 완전판, 대원 신장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처음 완전판 나올 때 초판으로 사서 특전 엽서를 챙길걸 그랬음 (그땐 시력이 아쉽지 않아서 ㅠㅠ) 일단 완전판 크기 엄청 좋다. 커다란 판형은 커다란 장점. 안경 없어도 웬만한 글씨나 표정이 보인다.
애초에 료타하고 함께 만든 캐릭터라지만 영화에서도 제 분량 챙겨가는 것도 재주요 가장 괘씸한 점은 경기중 3점 슛 넣을 때 료타는 몇 년 전 같이 농구하던 거 회상하며 막 기쁜 얼굴 하는데 저놈은 료타 만났던 거 기억도 없고 앞으로도 모를거고 그래 그게 쟤 인생 요약이라 구경하던 내가 다 홧병
일러스트집에 실린 98년 캘린더 그림. 료타가 4번을 달고 있지만 여전히 아대��� 하고 있다. 영화 만들기 한참 전 그림이라서 아대를 벗는 설정은 아직 없다. 뭔가 다른 작가들보다 치밀해 보이는 이노우에 역시 설정 단계에서는 모든것이 희뿌옇기만 하다. 과거도 미래도 명확한 것은 없다.
사쿠라기 군단말고 농구부를 모아놓으면 좀 웃김. 교복 셔츠 넣어 입고 꿋꿋하게 빼서 입고 보란듯이 헤쳐 입고 교복인 척 딴 거 입고 멀쩡하던 아카기도 학교를 벗어나면 어딘가 달라진다. 이런 걸로 개개인의 성격을 보여주는 솜씨 정말 좋음. 옷매무새 한결같이 단정한 산노랑 정말 비교되는 것까지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렸지만 팀이 위기에 몰리자 장도고 감독은 선수들에게 필요한 해답을 딱 집어서 가르쳐준다. 결국 여기가 승부의 갈림길이 된다. 장도고는 '아직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들'로 남아버렸다. (그리고 이 문제는 주인공 상호가 넘어야 하는 만화의 마지막 과제가 된다)
이노우에는 인물만 잘 그린 것이 아니라 스타일을 그릴 줄 아는 작가였다. 특별히 센슈얼하고 패셔너블한 의상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일상적인 옷과 헤어스���일을 때와 장소와 다양한 인물에 어울리도록 그리는 상식과 안목이 있다. 그 시대 남자 작가로선 엄청 희귀하고 돋보이는 재능이었다.
부원들 살피는 것뿐만이 아니라 감독님의 지시 의도 즉각 파악해서 코트에서 '100% 그대로 실행'하는 것 역시. 이런 선수 하나 있으면 감독이 엄청 편할 것 같음. 감독님 한마디에 코트로 나가는 미츠이는 삼천 마리 양 떼를 홀로 몰고 나가 먹이고 돌아오는 보더콜리처럼 자부심 가득하다.
작가의 이런 태도를 독자들도 감지한다. 료타는 비어있다. 상어의 후각으로 태평양 한복판에서 피 한 방울을 찾아내 돌진하는 2차 동인들도 료타는 걍 냅뒀다. 있긴 있었지만 있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수준이다. 아야코가 있어서 료타 2차가 없었다고? 하루코가 있는 사쿠라기는 2차에서 어땠더라.
애용하는 선글라스는 동그란 모양. 계절적 배경 때문일까 웬만하면 항상 반바지. 오렌지/노랑 이미지 컬러. 교복 셔츠 포함 단추 채우는 화이트 셔츠 절대 안 입음. 료타의 스타일은 일찍 완성된 모양. 출신지 설정은 처음부터 중요했고 오키나와의 바닷가를 달리는 소년의 이미지는 영화로 완성되었다
피어스의 핵심이 영화에서 미츠이에게 넘어간 것이 쇼크였음. 처음 영화 보고 나오면서 감격하면서도 속으로 뭔가 이상한데 피어스 내용이 어땠더라 기억이 잘 안나서 막 심란하고 이노우에는 정말 헤테로 로맨스 안 그리려고 여전히 필사적이구나 아니 근데 중학생 미츠이가 거기서 나오면
사쿠라기와 친구들은 같은 패거리의 패션이다. 연재 끝난 다음인 2006년의 축전, 2018년의 신장판 표지에선 이들에게 늘어뜨린 벨트 장식이 꼬박꼬박 추가된 점이 보인다. 연재 중엔 없던 유행인데 나중에 벨트로 멋내는 애들 보고선 저거 사쿠라기에게 어울리겠구나 그려줘야지 생각했으려나.
만화에서 안자이 감독은 '미츠이군은 중학 시절을 넘어섰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선수로서의 성장을 확인시킨다. 영화에서는 료타의 회상 장면으로, 표정으로,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무구한 소년의 귀환을 관객에게 알린다. 그렇게 기억 없는 미츠이와 영영 아무 말 하지 않을 료타라는
미츠이에게 부담이 될만한 말은 하지 않는다. 내일이라도 다시 길에서 볼 것처럼 가볍게 인사하고 가버린다. 이 90년대 스타일의 가벼운 이별의 미학은 화면에 그려지지 않은 둘 사이의 가볍지 않은 내면의 잔상을 읽을 때 완성되는 반어법이고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짧은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완벽하다
이 고등학생 정말 위험하다. 아직 2학년밖에 안 됐는데. 그리고 주변의 동급생 소녀가 아닌 연상의 성인 여성의 반응을 반복해서 그려 센도는 이미 성인 남성의 매력으로 어필하는 캐릭터라고 디테일하게 묘사하면서 팬들이 왜 온나타라시라고 하는지 모른단 소릴 잘도 하는 작가가 아무튼 나쁘다.
소타는 최강 명문 입학이 아닌 도전자 되기를 희망한다. 이런 부분은 원작에서 쇼호쿠를 선택한 미츠이나 1인자가 성에 안차 다시 도전자가 되어 미국으로 향하는 사와키타와 동일하다. 안정된 길 마다하고 험로를 달리는, 소년만화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그 시절의 튀는 아이들을 그려낸 것은
센도는 처음부터 줄곧 스타일리시해 보였다. 아무렴 헤어스타일이 저런데 모양내기에 무심할 리가 있나. 센도의 샤프한 헤어스타일은 만화 속 90년대의 시작이고 상징 같았다. 연재 당시 센도의 머리는 특히나 국내 소년 만화 시장에 세운 머리 유행을 선도한 첨단 스타일이었는데,
미츠이는 특정 도안을 우선한 캐릭터가 아니라서 작가가 그려보고 싶은 대로 그려도 되는 공간이 있고 조연이기 때문에 별다른 부담도 없다. 스타일이 먼저 정해진 다른 캐릭터들이 입지 않을만한(하지만 작가가 그려보고 싶은) 스타일이 미츠이에게 가면서 미츠이는 외형이 다양해진 것 같다.
슬램덩크 내에서 가장 자기 스타일을 즐기는 캐릭터는 료타이다. 피어싱이나 선글라스 같은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영화 이후 향수도 추가. 처음 료타가 등장했을 때는 양쪽 귀 모두 피어싱을 했는데 체육관 싸움 도중 왼쪽으로 정리된다. 피어싱도 아대도 이때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던 시절.
이 관계가 매력적인 이유는 미츠이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짧은 순간을 기억하는 료타가 차라리 비정상적인데 그렇기 때문에 료타는 더욱 절박하고 안쓰러워 보인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불안한 구도가 가진 긴장감은 화면에 그려진 그림일 때나 사람 사이의 감정일 때나 언제나 시선을 끈다.
요헤이는 농구 만화에서 농구 외의 인물이기 때문에 살짝 사각지대에 있다. 작가의 오른손처럼 스토리를 능란히 누비더니 작품 마무리 어느 순간 슬쩍 빠져나간 것 같은 이 매력적인 언성 히어로에 대해 언젠가 노련한 인터뷰어가 이노우에를 붙들고 집요하게 물어봐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상대 팀에 부상 선수로 인한 공백이 생기자 마키는 그 약점을 노려 공격을 지시한다. 예전 만화에서라면 이건 필패를 부르는 비겁한 짓이다. 그래서인지 전통적 소년만화 열혈 캐릭터 계보의 키요타는 마키의 지시에 일단 거부감을 보인다. 그러나 마키의 태도는 단호하고 카이난은 승리한다.
슬램덩크 속의 인물들은 우리가 그 이전 드러내지 말라고 배웠던 감정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나는 천재다. 나는 너를 이길 수 있다. 내가 최고다. 내가 이 경기의 주인공이다... 이것을 인물의 내면, 깊이 감춰둔 열정쯤으로 한 겹 포장해서 그리는 게 아니고 대사로, 표정으로, 밝게 드러냈다.
아카기에겐 농구부 활동 당시의 부드러운 부분을, 사쿠라기에겐 즐거웠던 부분을, 루카와에겐 자신의 코어, 완고함, 신념을, 미츠이에겐 인간의 평범한 부분, 감추고 싶은 나약함을, 료타에겐 작은 신체를 주었으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료타는 다 그려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함.
하나가타는 교복과 농구부 점퍼 말고 입고 나온 사복 한 번으로 설명이 끝났다. 흰색 카디건. 그래서 완전판 낙서로 성적이 학년 톱이란 사실이 알려지기 전 90년대에도 하나가타는 모범생 우등생 이미지였고 하나후지 동인들은 흰색 카디건의 연장된 이미지로서 더플코트를 곧잘 입혔다...
안자이 감독이라는 캐릭터는 구시대 소년 만화가 90년대 리얼리즘과 만나는 과도기에 위치한다. 뒤늦게 안자이 감독의 과거 이야기를 만들어 만화 전반부 빈약한 비중과 이유를 설명��지만 한계는 있다. 옛날 만화를 요즘 기준으로 보면 많이 부조리해 보이겠지만 그 또한 그 시절 사회의 모습이다.
쓰다 보니 내가 다 상처받네. 헤테로 연애 담당이었으면 제대로 연애라도 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라서 연재 6년 내내 아야짱♡만 하다 만화 끝났음. 이게 연애면 루카와하고 루카와 친위대가 슬램덩크 주인공이고 슬램덩크는 리디 로맨스 코너에 가서 스포츠물 무심남주 키워드 달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좋아하는 장면... 이 체육관에는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해. 미츠이 팬들도 요헤이 팬들도 모두 엄청 좋아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든 패버릴 수 있는 요헤이를 드러낸 장면이며 모두가 두들겨패도 아무도 꺾지 못하는 미츠이의 징한 구석이 나오기 시작한 부분.
처음엔 소소한 추억과 놀라움에 마음이 출렁였으나 이노우에가 90년대의 유행 고증에 큰 열의가 있어 보이진 않고 어쩌다 보니 녹색이 되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우연한 선택일지도 모를 녹색은 그때 입고있던 와이드 핏 데님과 합쳐져 유행에 무심하지 않은 미츠이의 인상을 더욱 강화.
여럿을 함께 그린 일러스트는 언제나 소란하고 재미있다. 무려 아카기가 유행 아이템 밀리터리 베스트를 입었다. 그런데 우오즈미가 입은 것은 대체 무엇인가(???) 후쿠다는 원작에서 농구 소년다운 옷만 입었는데도 헤어스타일과 버킷햇 때문인지 료타만큼이나 패션 피플일 것 같단 인상.
원작에서 미형을 판별하는 방법은 작 중 여성 캐릭터의 반응이다. 여성 캐릭터는 별로 그려주지도 않으면서 이노우에는 이럴 땐 꼭 여자를 데려와서 이 캐릭터는 얼굴로 이성의 환심을 산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렇게 해서 증명을 마친 미형은 루카와, 미츠이, 센도, 후지마, 사와키타.
영화 개봉 후, 작가도 나이 들어 시각이 바뀌었네 옛날 슬램덩크가 아니야 하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작가 시각이 바뀐 것은 나도 동의하고 그것이 더 좋은지 나쁜지는 팬들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소타가 '최강 산노를 이긴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작가의 좋아하던 내면은 여전해 보여 기뻤다.
연재 당시 산노전을 그렇게(포기를 모르는 남자, 이제 내겐 림밖에, 조용히 해라 이 소리가 기타 등등 많이) 마치고 나서도 미츠이한테 여전히 더 그릴 것이 남아있다니. 저렇게 계속 새로운 테마를 가져오는 미츠이와 작가에게 감격도 하고 감탄도 하고 탄식도 하다 깨달았다. 아, 뮤즈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