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가 날리는 오후, 아들의 사망 신고를 마쳤다.
9년 1개월. 네가 내 아들로 살았던 시간이 이렇게 정리된다.
난 부족한 엄마였지만, 넌 날 한없이 사랑해줬다. 네 손을 잡고 걸을 땐 세상 모든 행복이 내 것 같았고, 네가 소리내어 웃을 땐 세상을 살아낼 희망이 생겼다.
이젠 모두 안녕.
출퇴근 만원 지하철에서 성추행 당한 끔찍한 경험을 누군가가 워킹맘카페에 올렸는데, 댓글에 유사한 일을 겪었다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가해자들의 공통점
- 주로 60-70대 할저씨
-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하여 인파 속에 숨어 성추행
- 주로 엉덩이를 만짐
- 소리 지르면 줄행랑
어제 대법원 판결로 인해 수많은 분들이 함께 분노하고 아파해 주셔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동원이가 떠난 후로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원이가 보고싶어서 주저앉을 때도…
바비는 여성 해방 영화다!
영화 속 글로리아의 독백을 들으며 울뻔 했다.
“여자로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야. 여자는 말라야 하는데, 너무 심하게 마르면 안되. 건강이 먼저라고 말해야 되는데, 그래도 몸이 날씬하긴 해야되. 돈도 있어야 하는데, 돈을 밝히는 건 안되. 보스가 되야 하지만,
용기를 내어 아들의 옷을 정리했다.
아들이 결혼식 갈 때 단 한 번 밖에 입지 못한 양복을 발견하고 주저앉아 오래도록 울었다.
이 옷을 입었던 날 함께 나누었던 대화, 아이의통통한 볼과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모든 것이 변해버린 지금 나 혼자 아들의 기억 속에 갇혀 있다..
엊그제 항소심 2차 공판에서 읽은 피해자 측 진술 전문을 올립니다. 최종 판결까지 관심가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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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
저의 아들 이동원 군이 세상을 떠난지 어느덧 9개월이 지났습니다.
동원이는 역사를 좋아하고 어른들과의 토론에 능하며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을 즐기는…
남자들이 다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업계에서 일하는 여자는 다 알지. 가끔은 내가 이 동네의 제일가는 미친년이다, 건드리면 물어죽인다. 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걸. 헤헤 호호 하면 진짜 개호구됨. 무서운 년 프레임 씌워지는 게 훨씬 낫다. 내 정신건강과 업무 수행에.
오전에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홍XX 여사님’ 이라고 뜬다.
예전 회사의 사무실 미화를 해주시던 청소 여사님이다. 건너건너 동원이 소식을 듣고 발만 동동 구르시다가 1년이 지나고 나서 이젠 좀 나아졌으려나 하고 전화하셨다고 한다. 많이 울었다.
이런 위로들이 조금씩 나를 살린다.
“가장 큰 폭력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정의롭다 믿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 같아요 (…) 반면 본인의 모든 게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념이기 때문에, 자신이 틀릴 수 있단 생각을 안 하죠.
나 역시 의도와 무관하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김승섭
내일 오전 아들 사건 선고 공판을 앞두고 복잡한 마음이 든다.
음주운전이 중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을 심어줄 급진적 판결이 필요하다는 공적 자아와,
아이는 돌아올 수 없다는 변치않는 사실 앞에 형량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는 사적 자아가 갈등한다.
일단은 내일 하루를 잘 견뎌야지.
이 나라, 정확하게는 이 동네에서 부모로 사는게 왜 숨막히는지 이제야 알겠다.
자기 에너지의 대부분을 자식의 대학 걱정에 쏟아 붓는 사람들, 학교는 빠져도 학원은 목숨 걸고 보내는 사람들, 황소 수학학원을 다녀야 하고 초등학교 때 영어를 끝내놔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보내주신 위로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모여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슬프지만 한 걸음씩 떼보려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주변을 챙기는 아빠의 모습을 평생 보고 자랐거든요. 그런 아빠처럼 저도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곳을 모른척하지 않고 살게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업무 생산성이 너무나도 떨어지는 하루라 기분이 별로다. 언젠가 상담 선생님이 해주신 얘기를 떠올리며 스스로 다독여본다.
"모든 일을 다 잘 하려고 욕심 부리니까 손 댈 엄두가 안나는 거에요. 잘 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세요. 그냥 하는 것도 대단한 거에요"
방학이 되니 오빠의 빈자리를 실감하는 딸에게 분위기를 바꿔주기 위해 무리해서 미국에 왔다.
디즈니랜드에 가도, 야구장에 가도, 미술관에 가도 ’동원이가 같이 왔더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이 생각 뿐이다.
물론 너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에 있다는 걸 알지만 가는 곳 마다 네 얼굴이 떠오른다.
문득 이렇게 잘 지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하고, 운동하고, 삼시 세끼 챙겨먹고(식욕은 줄지도 않아ㅠㅠ), 사람들과 농담도 하고, 밤엔 졸려서 잠에 들고..
네가 없는데 나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어도 되나 불현듯 너에게 미안하다.
아마 네가 거기서 날 지켜주고 있어서겠지?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최고의 능력은 쎄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다. 이름하여 ‘쎄이다’.
나르시시스트를 비롯하여 나랑 안 맞을 것 같은 인간은 초장부터 걸러낼 수 있는 특별한 재능 덕에 사람에게 뒤통수 맞거나 크게 실망할 일 없이 살아왔다.
반면 같이 사는 사람은 못 걸러냈다는게 함정 ㅋ
지난 21년을 돌아볼 때, 직장생활에서 워라밸 적당히 지켜가며 일하고 동시에 업무적으로도 급격히 성장하고 그런 건 없었다.
내가 성장하려면 내 삶을 희생할 정도로 몰입해서 치열하게 일하는 시기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저는 옛날 꼰대라 이렇게 생각하나, 반박 시 님 의견이 절대적으로 맞습니다
슬픔이라는 것이 가슴 한가운데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것 같다. 종종 울고, 가끔 웃고, 어떨 땐 숨쉬기 힘들다.
아들의 죽음에 같이 울어주는 많은 분들께 감사하고 힘이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처럼 가족을 잃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분들의 억울함은 누가 풀어주나 하는 생각에 죄송하다.
내 아이가 금쪽이라면, 그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누군가의 금쪽이라는 걸 알아야만 한다.
학교 수업은 우스워도, 학원 선행 진도는 목숨 걸고 따라가게 하는 부모들에게 말한다. 학교는 당신 아이들을 위한 맞춤 서비스 업체가 아니며 다수를 평균적으로 교육하는 기관이다.학교와 선생님에게
비오는 어린이날, 아들을 떠올린다.
엄마아빠가 늘 바빴던 두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어찌보면 서로였을지도 모른다.
학원을 별로 안 다녀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둘은 엉뚱한 놀이들을 지어내서 함께했고, 책벌레였던 동원이가 독서하는 모습을 딸은 옆에서 늘 구경하곤 했다. 그런…
경력 21년 44세.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 사람이 많고, 헤드헌터들 연락이 끊이질 않는다.
커리어 곡선 상 고점 가까이에 다다른 것 같은데 정작 나는 내 전문성과 능력에 대해 의심한다.
이럴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어제보다 조금 나은 내가 되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8년 만에 온 미국.
코비드 이후에 치안이 많이 나빠졌고, 많은 사람들이 부끄럼없이 인종차별을 자행하고, 물가가 심하게 오르고 등등 안 좋은 점들을 찾자면 끝도 없지만 미국은 여전히 내 마음 속 제 2의 고향이다.
미친 사람은 미친대로,
부족한 사람은 부족한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각자 살아가는
동원이에 대해 좀처럼 얘기하지 않는 둘째가 잠자리에서 입을 열었다.
“엄마, 사실 어제 밤 꿈에 오빠가 나왔어요”
“정말이야? 오빠랑 뭐했어?”
“오빠랑 둘이서 손 잡고 옷 사러 다녔어”
“진짜야? 오빠는 어떤 모습이었어?”
“응.. 항상 그런 것처럼 건강하고 씩씩했어”
“오빠 보니까 기분이 어땠어?”…
12월 2일, 동원이의 기일.
지난 1년간 어떻게 살았나 돌아보니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게 있는 모르는 이들의 기도와 지지로 여기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슬픔 가운데서도 웃을 수 있고,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을 배우는 한 해였다. 이렇게 중년이 되어가는 걸까.
모든 여성들의 귀감이 되는 긴즈버그 대법관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인터뷰 중 가장 인상깊은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여성의 삶이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남성의 삶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18세에 만나 이제껏 함께 인생을 공유해온 엄청난 행운을 누렸다”
"To make life a little better for people less fortunate than you. That's what I think a meaningful life is. One lives not just for oneself, but for one's community."
Hear some of the most memorable words from Ruth Bader Ginsburg's speeches over the years.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에서 이과 전국 50등을 하던 친언니가 주부로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종종 화가 난다.
정작 본인은 좋은 학벌과 성적표는 잊은지오래라고 하지만, 수준 차이나는 배우자를 만나서 10대 때의 꿈과는 한참 멀어진 삶을 사는 언니의 모습을 보는 건 늘 힘이든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아이의 부재를 매일매일 실감한다.
하교길 분식집에서 사먹는 컵볶이를 좋아하던 아이, 까치집 같이 쭉쭉 뻗은 머리카락 끝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그리고 날 보면 쉴 새 없이 재잘재잘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던 천진한 얼굴..
일년 중 몇일 되지 않는 눈부신 초가을 날…
어떤 작가가 한 책에서 '인생의 기쁨과 고통의 정점들을 이 정도면 충분히 겪었다'고 쓴 구절을 봤다.
나는 그것이 대단한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을 사는 동안 얼마나 더 큰 고통과 얼마나 더 큰 기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아들을 보내면서 처절하게 배우게 된 사실이다.
건물에 들어가거나 나올 때 바로 뒤에 오는 사람이 있으면 1~2초 정도 잡고 기다려주는 버릇이 있다. (내가 경험한 미국이나 프랑스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한국 남자들은 열이면 여덟은 내가 잡고 있는 문을 통과해간다. 그렇게 도어맨이 됐던 게 셀수도 없이 많다.
“전세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등기부���본을 떼어보는 수업을 한 적도 있다. 그런 수업을 하고 나면 아이들이 아주 좋아한다. 그런 수업 후에 교실 문을 닫고 나오면 등이 찌릿찌릿할 만큼 뿌듯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내 교사 업무의 20%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잡무다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지만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생의 이 모든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올 한해 내가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여러 장치들.
1. 회사 출근 - 월급 값은 해야지.
2. 팀원들 - 그들은 매순간 내 말과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부끄러운 리더가 되지…
[긴급] 여러분의 도움을 요청 드립니다.
현재 경찰은 가해자의 뺑소니 혐의를 빼고 수사를 진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유족측은 다음과 같이 탄원서를 모으고 있으니 힘을 보태 주세요.
하기 링크 파일 다운-출력-서명 후 촬영or스캔-이메일 전송 daiseunglee
@gmail
.com
진짜 어이없는 게 뭔지 알아요?
평소에는 학교 수업 우습게 알고 자기들 어디 놀러갈 때 며칠 씩 체험학습 쓰는 건 밥먹듯이 하는 엄마들이, 9/4에 학교 보내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작금의 현실.
님들은 학교 보내지 말고 대치동 학원에서 하루 종일 대학입시 준비나 시키세요
오늘
#U2
공연 최고의 모먼트는
#bono
가 이 말을 하며 영상이 나왔을 때이다.
“Women of the world unite to rewrite the history to HERSTORY”
내가 찍은 영상에는 없지만 서지현 검사, 설리의 얼굴이 나왔을 때 나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여성들은 울컥했을 것이다.
아들을 떠나보낸 후로 좀처럼 책이 읽히질 않다가, 누군가가 추천한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를 단숨에 읽었다.
참척의 고통으로 신을 원망하는 여러 구절들을 보며, 그래도 나는 그가 부러웠다. 25년 5개월을 그의 엄마로 살며 그래도 아들의 사춘기와 졸업식, 장성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