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윶으로 소개팅 상대인 줄 알고 성현제한테 전화 거는 한유진으로 착각로코 보고싶다...
"여보세요? 잘 들어가셨어요?"
-누구지.
"오늘 미팅 했던 사람이에요. 아까, 그 카페에서."
-미팅?
전화를 잘못 걸었나? 한유진이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상대가 말했지.
-그럼 그쪽 이름이...
"유진이요. 한유진."
-아, 이제 기억이 나는군. 한유진 군은 잘 들어갔나?
"잘 들어갔어요."
통화로 들으니 목소리가 더 좋았음. 자기 전이라 잠긴 듯한 목소리가 도리어 매력적이게 들렸음.
"덕분에 오늘 너무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그랬다니 다행이야. 나도 마찬가지거든.
"정말요?"
한유진이 흘리듯 말한 것에 상대가 조용해졌지. 잠시 말을 고르는 듯 하던 상대는 맛이 자기 취향이 아니었다며, 맛 자체는 상당히 훌륭했다고 답했지. 어쩐지 구구절절하게 들리는 변명이었지만 한유진은 웃었음.
"그럼 어디서 볼까요?"
-◇◇커피가 맛이 괜찮던데.
"좀 멀긴 한데... 좋습니다."
-거리가 멀다면 데리러 가겠네.
"어우, 괜찮아요. 택시 타면 금방이죠."
택시 타면 만 원은 금방이겠는데. 남자는 괜찮다고, 데리러 가겠다 말했고 한유진은 결국 회사 주소를 말해주었지.
-마침 근처에서 미팅 약속이 있으니 사양할 것 없어.
"세심하시네. 인기 많으셨겠어요~"
-없진 않았지.
아까는 긴장해서 수줍음을 타셨던 건가. 아까보다 농담도 잘 하시고 더 재밌네. 한유진이 자기가 조심해야겠다고 한눈 팔면 다른 사람이 낚아가겠는 거 아니냐며 웃었음
-글쎄. 물고기도 먹기 싫은 떡밥은 물지 않지
"제 떡밥은 좀 맛있어 보였어요?"
-음.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지.
-그런 것 같아.
한참 이야기하던 두 사람은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한다는 걸 알게 되었음. 대부분이 한유진의 일방적인 대화였으나, 상대도 워낙 반응을 잘해준 탓에 대화가 길게 이어졌지.
-한유진 군은 어떤가.
"뭐가요? 아, 설마. 또 떡밥 얘기는 아니죠?"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맞네.
"참나."
놀릴까, 말까. 고민하던 한유진은 의뭉스레 답했음.
"전 물고기라고 안 했는데."
-이런.
"뭐어, 그래도 제가 물고기였음 맛없는 떡밥은 안 먹었겠죠."
한유진의 장난기 가득한 말에 남자가 전염된 듯 웃었음.
-슬슬 잘 시간이군.
"언제 이렇게 됐대. 그럼, 이제..."
-먼저 끊게나.
"먼저 끊으세요."
-통화 종료버튼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어, 한유진 군이 먼저 끊는 수밖에 없겠는데.
"아이고. 손가락 한 번 더듬으면 끊기겠는데요? 자~알 더듬어 보세요."
-손가락에 쥐가 나버렸군.
"야옹이라도 해드릴까요? 먼저 끊으십쇼."
-......
"저기요? 벌써 주무세요?"
-으음.
"다 티나거든요."
"참나 진짜. 제가 먼저 끊을게요!"
통화버튼에 손이 닿기 직전 잘자라는 말이 들려왔음. 한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올라가있는 입꼬리를 매만지다 베개 위로 엎어졌지.
'다음주는 또 언제 오냐.'
내일 또 전화 걸어도 되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한유진이 잠에 든 것은 새벽 2시였음.
남자와 한유진은 종종 연락을 주고 받았음. 어느날은 문자, 어느날은 전화. 답장은 느릴 때도 있었고 빠를 때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소소한 즐거움이었음.
"드디어 내일 모레에 보네요."
-...그렇지.
상대의 목소리가 어두웠음. 덜컥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
"혹시 만나기 싫으신 건, 아니죠?"
-아닐세. 뭘 입고 갈지 고민하고 있었거든.
"벌써요?"
-그래. 날이 선선하니 가벼운 차림이 좋겠지.
"요즘 일교차가 심해서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돼요. 밤에는 갑자기 추워지잖아요. 감기 걸리는 거 한순간입니다."
-그리 걱정해주니 몸둘 바를 모르겠어.
"예에. 어련히 따뜻하게 입고 나오시겠죠."
티격태격 농담에 농담으로 응수하며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새벽에 가까워지자 통화를 끊었지. 침대헤드에 몸을 기대고 있던 성현제가 노트북을 덮고 생각했음.
한유진은 소개팅 상대의 얼굴을 알겠지. 그렇다면 완전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참 곤란하게 되었어.'
처음부터 속이지 않았다면,
이라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가기도 했으나 후회는 짧았지. 사실대로 말하고 나서 벌어지는 일은 이미 제 손을 떠난 일들이다. 게다가, 어떻게 되든 한유진과는 그리 깊은 관계도 아니고. 만나본 적도 없으니 이대로 끝난다 해도 별로.
아쉽지 않을까?
성현제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음.
주말은 눈깜짝할 새 지나가고 다음주 월요일이 찾아왔지. 한유진은 퇴근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음. 애매하게 월요일로 정해진 건 서로의 일정 때문이었지
'시간 더럽게 안 가네.'
원래 회사에 오면 시간이 안 가지만, 오늘은 유독 느린 것만 같았음. 상대에게선 연락 한 통 오지 않고, 아주 지루했음.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한유진은 슬슬 눈치를 보며 갈 준비를 시작했음. 억지로 야근을 시키는 곳은 아니었지만,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가기엔 어쩐지 눈치도 보이고. 그런데 저 멀리서 팀장님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달려와선, 다들 빨리 퇴근하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지.
"빨리 퇴근들 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위를 살펴보는데 비싼 외제차 한 대 말곤 주변에 차가 보이질 않았음. 저건 아니겠지. 어디쯤 오셨을까.
[어디예요? ^^]
[회사앞]
[안 보이는데]
회사 앞이라고? 한유진이 열심히 고개를 돌리는 동안 누군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음.
"한유진 군."
"네?"
한유진이 고개를 들었음. 기다리던 제 앞에 나타난 건 말끔하게 차려입은 훤칠한 남자였지. 그것도,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낀 아주 수상한 모습의 남자.
"...안 불편하세요?"
"급성상기도염에 걸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네."
"네? 심각하대요?"
"심각한 건 아니고. 일단 차로 가지."